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첫 눈 / 김소월


땅 위에서 녹으며
성긴 가지 적시며
잔디 뿌리 축이며
숲에 물은 흐르며
눈도 좋이 오고녀

초열흘은 넘으며
목화송이 피우며
들에 안개 잠그며
꿩도 짝을 부르며
눈도 좋이 오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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