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북동 산동네 출신. 흙이 좋아요.
흙냄새도 좋고,이 더위에 시원하게 파고 들어앉으면 쾌적해요. 더이상 흙에 응가는 안해요. 엄마탐정이 여러번 수사했지요. 진짜라구요.


열대야가 길었던 밤에 흙찜질은 시간가는 줄 모를정도로 즐거웠어요.

​​

그 옆에 선인장 화분은 보들보들하니 기어오를만 했어요.
이제 내가 못들어가는 침실로 옮겨져서 안보여요.




화분 안에 장식용 솔방울이나 조개껍질이 있기도 해요. 드리블하는 맛이 공이나 병뚜껑하고는 완전 달라요.
그러니 하나하나 다 살펴보아야해요. 히힛




나를 봐주지도 않고 잠잘시간에 깨어서는
조용히 뭘하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간식도 안주고
장난감도 안주고


슬쩍 훼방도 놓아요




나하고 놀아줘요

여기저기 올라가고 있어요.
궁금한 게 많아요. 만져보고 냄새맡고 쫓아가 보아야 해요.


내가 수컷인게 어때서

나는 밥도 잘먹고, 똥도 잘싸고 이렇게 즐거운 걸

나는 그냥 '그냥'이라고​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주인아짐이 나를 안더니만 좁고 어두운 상자같은데 넣고 잠갔어요. 나쁜 인간! 미워할거에요. 비명지를 틈도 없었어요. 집밖에 나가 엘리베이터, 그 다음엔 차를 타고. 답답한 곳에 갇혀서 나는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요. 몸도 맘도 얼어붙어요.

동물들 냄새가 많이도 나는 곳, 한참을 기다리다가 남자 선생님이 있는 방에서 나를  풀어주었지요. 그 나쁜 아줌마가 이야기를 했어요.

' 구조하고 바로 집앞 동물병원에서 여자아이라고 했는데, 커가면서 뭐가 보여요..'

나는 선생님의 책상옆 구석으로 머리를 쳐박고 숨었어요. 털이 쌓여있는 곳. 선생님은 내 목덜미를 잡아다 눈앞에 두고, 꼬리를 살짝 치켜 올려 엉덩이를 쳐다봅니다. 부끄럽게 왜 이래요! 

'남자 맞아요'

'...그쵸? 뽕알 맞죠? 이 자식! ㅋㅋㅋ'

목덜미에 주사 한방, 벌레 쫓는다는 약도 발랐어요. 으엥으엥 여기 싫어. 몇 주있다가 또 가야한대요.

다시 상자에 넣어져, 차 타고, 엘리베이터도 타고 집에 왔어요. 이동장 문이 열리자 마자, 제일 좋아하는 돌멩이를 숨겨둔 곳, 서랍장 아래에 한참 숨어 있었어요. 또 붙잡힐까봐, 상자에 가둬질까봐, 차타고 무서운데 오래오래 갈까봐, 싫어요. 무서워요.  




내가 언제 여자라고 거짓말했나 뭐, 자기들끼리 공주라고 불러놓고선.








흥!

까슬까슬 인견소재가 좋아요. 인견 반바지 입은 주인님에게 기대있기도 시원하고요. 에어컨 바람 쏘이며 매트에서 낮잠도 달콤해요. 집사가 이불도 옷도 열심히 세탁하네요. 아이 쾌적해.

​​​​

그 다음 찾은 것은 수건이에요. 조용하고 아늑한 수건장. 돌돌말린 수건은 어릴떄 같이 놀던 냥이들 몸집만하니 편안해요. 살금살금 구경을 하고 나왔다가 딱 걸렸어요. 흠씬 혼날까봐 얼음이 되었어요. 아아 나 어떻해.


웬일로 조용하고 친절하게, 주인은 수건장 문을 조금 열어주었어요. 수건뭉치 틈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집에 아토피 아저씨가 있어요. 수건장 문은 대부분 잘 닫혀 있어요.

나는 방구쟁이 ..였어요.
주인님과 노는데 구린내가.. 어른남자 방구냄새인줄 알고 주인아재가 오해받는 적도 있어요.

묽은 변에 소변냄새도 지독했지요. 화분에 실례한것도 집사가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로 알게되었어요.

모래에 응가를 해도 잘 묻어지지 않고 똥꼬주변이나 발에 묻기도 했어요. (히히 걱정마세요 사진 없어요.) 그리고 앉게 되는 매트에 똥꼬도장을 찍기도 해서 집사가 여러번 빨았지요. 때로는 주인아재 몰래.

음식과 모래에 적응하니 속이 한결 편해졌어요. 그루밍도 점점 더 잘해요.

나는 주로 이런것을 먹어요.

사료 - 로얄 캐닌 마더&베이비 캣
캔 과 간식- 런치 캔, 츄르
황태채 - 황태육수와 으깬 황태살
그리고 캣그라스가 잘라져서 얹어나와요.


그리고 두부모래 적응하며 잘써요. 장마철 뒤로는 습하지 않아 냄새도 덜해요.

집사가 냄새 없어지라고 베이킹소다를 잔뜩 섞은적이 있는데, 이 고운가루가 제 발에 묻어 집안 여기저기 .... 초보집사는 또 열심히 청소기를 밀더군요.






히히. 쑥쑥 자라고 있어요 나는. 이제 방구쟁이 아니에요.

이런데도 올라갈수 있어요.

​​​
뒷발도 잘써요 이런장난도 막하고요





집사는 이더위에 긴옷을 입더니
발톱깍아주기 시작했어요.

비밀이 있어요.
아직 집사는 모르는.

말할까 말까
그냥아 그냥아 우리 그냥공주-

캔을 주려나봐요. 집사가 부르네요.
일단 좀 먹으러. 데헷




​저녁에 집에 돌아온 집사가 비명을 지릅니다. 사진엔 안보이지만, 데헷, 응가도 했어요. 환경도 바뀌었고 마트에서 급히사온 사료에 며칠전 병원서 맞은 주사에. 응가는 묽고 냄새도 심하지요. 모래화장실 바로 옆에 있던 화분이었어요. 바로 체포당해서 혼났어요. 원예용 흙을 꺼내어 응급처치하고 화분을 손질하는 집사는 다음날 똑같은 장면을 또 맞이 했지요. 선인장도 보들보들하니 힘 안들이고 치워내기도 좋았어요. 두번째로 화분을 훼손한날 집사는 피해화분을 깨끗이 사망처리합니다. 나머지 두개의 큰화분은 내가 못들어가는 침실로 넣어버렸어요. 

냥이를 많이 키우는 ㅁ이모가 집사에게 충고를 했어요. 

* 응가를 버리지 말고 모래에 갖다놔요. 

그러면 화장실로 인식하는데 도움이 됨. (생략) 애기가 흙에다 화장실 쓰던 버릇이 있어서 자기딴에는 잘한다고 하는거에요. 집에서 유일하게 흙을 찾아서 거기다 고이응가한 거임. 똑똑이

뭐라고 하지 말아요. 뭐라고 하면 자기딴에는 흙에다 응가했는데 왜 혼나지 라고 생각해서 응가 참아 변비가 되거나 역으로 이상한 장소에 응가 할 수있음. 우리애도 첨엔 잘 몰라서 헤맸는데 이주만에 적응 *

아니 ㅁ이모는 나의 똑똑함을 보지도 않고 어찌안대요. 훗.


며칠뒤 재미나게 흙장난을 했는데 집사가 또 비명을 지릅니다. ㅁ이모덕에 혼나지는 않았어요.

이번엔 성수동 ㄹ이모의 조언이 저를 살렸습니다. 

*화분 다 치우셈 고양이가 혼란스러운 모양이네 어차피 고양이가 관심가지면 다 치우는 수밖에 없어. 고양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사람이 생각을 바꿔야함 앞으로 2년은 지지고 볶아야 하는데 벌써 힘빼지 말고 그냥 화분 다 고양이 못가는데 두거나 치우는게 ....*

ㅁ이모와 ㄹ이모는 간식과 사료 샘플, 형아와 누나들이 쓰던 장난감을 잔뜩 주었어요. 고맙습니다!

아래 사진의 난초화분은 바로, 주인아재의 공부방, 북향 창문아래로 귀양을 갔습니다. 침실과 주인아재 공부방은 제가 못들어가요. 아토피가 있어서 혹시나 피부가 불편해질까봐. 냥이 청정지역이 필요하대요.


성북동 ㅁ이모를 만나고 온 기특한 집사가 귀리싹을 키우더니, 화분을 살짝 놔 주었습니다. 귀리싹이 뭐야. 난 그런거 몰라요. 흙장난 신나게 하고 화분 속 돌멩이를 득템했지요. 드리블 하는 맛이 탁구공과는 달라요.  지금도 잘 가지고 놀아요. 주인아짐은 한숨 푹쉬더니 화분과 흙을 치웠어요. 캣글라스는 이제 따로 키워서 사료위에 예쁘게 잘라져서 나옵니다. 


나,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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